3줄 요약
- 정부가 올해 가계부채 총량 증가율 목표를 1.5%에서 3% 수준으로 올렸습니다.
- 그런데 7월 은행 일반 주택담보대출은 6월 1조 7,000억 원에서 2조 원으로 오히려 늘었습니다.
- 총량은 은행이 늘릴 수 있는 ‘전체 물량’이라, 물량이 늘어도 내 한도가 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목표 숫자가 두 배가 됐습니다. 그러면 대출도 두 배 쉬워져야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발표 다음 날,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은행연합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총량목표 조정이 시장에서 대출관리 기조의 완화로 인식되어 투기적 수요를 자극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목표는 올렸는데 완화는 아니라고 합니다. 두 말이 동시에 참인 이유는 ‘총량’이라는 단어의 뜻에 있습니다.
총량관리는 은행 창구에 걸린 ‘오늘 물량 마감’ 팻말입니다
가계부채 총량관리는 금융당국이 한 해 동안 가계대출을 얼마나 늘릴지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은행·보험사·저축은행에 나눠 주는 방식입니다.
동네 빵집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하루에 구울 수 있는 빵이 100개로 정해져 있다고 해봅시다. 손님 지갑이 아무리 두꺼워도 100개가 다 팔리면 그날 장사는 끝입니다.
은행도 같습니다. 올해 이 은행이 늘릴 수 있는 대출 칸이 정해져 있으면, 그 칸이 차는 순간 창구는 “이번 달은 접수가 마감됐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내 신용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목표를 1.5%에서 3%로 올렸다는 건 굽는 빵을 100개에서 200개로 늘렸다는 뜻입니다. 빵 종류를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차이가 이 글의 전부입니다.
내 소득을 보는 DSR과, 은행 물량을 보는 총량은 다릅니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내 연소득에서 빚 갚는 돈이 차지하는 비율)은 나를 봅니다. 내 소득과 내 빚을 계산해 한도를 자릅니다.
총량은 나를 보지 않습니다. 은행을 봅니다. 내가 DSR을 여유 있게 통과해도 그 은행의 올해 칸이 차 있으면 대출은 다음 달로 밀립니다.
그래서 대출은 문을 두 개 지나야 나옵니다. 첫 문은 내 소득, 둘째 문은 은행 물량입니다. 하나만 열려 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연말에 유독 “한도가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1년 치 칸이 그쯤 바닥나기 때문입니다.
7월에 대출이 줄었다는데, 늘어난 칸도 있었습니다
금융위원회가 8월 14일 발표한 7월 가계대출 동향(잠정)을 보면,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6조 2,000억 원 늘었습니다. 6월(8조 3,000억 원)보다 증가폭이 줄었습니다.
헤드라인만 보면 “조이기가 먹혔다”입니다. 그런데 은행 주택담보대출을 쪼개면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 은행권 주담대 구분 | 6월 | 7월(잠정) |
|---|---|---|
| 일반 주담대 | +1조 7,000억 원 | +2조 원 |
| 집단대출 | +1조 5,000억 원 | +9,000억 원 |
| 전세대출 | -4,000억 원 | -4,000억 원 |
일반 주택담보대출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줄어든 쪽은 집단대출(분양받은 사람들이 단체로 받는 중도금·잔금 대출)이었습니다. 전세대출은 두 달 연속 4,000억 원씩 줄었습니다.
전체 숫자가 줄었다고 모든 칸이 줄어든 것이 아닙니다. 평균은 이런 걸 감춥니다.
‘증가폭 축소’는 지난달과 견줬을 때만 맞는 말입니다
비교 대상을 바꾸면 같은 6조 2,000억 원이 달라 보입니다.
같은 자료에 지난해 7월 증가액은 2조 2,000억 원으로 적혀 있습니다. 올해 7월은 그 2.8배입니다. 금융위원회가 밝힌 최근 5년 7월 평균 증가액은 3조 6,000억 원입니다. 올해 7월은 그 1.7배입니다. 두 배수는 발표 자료의 숫자를 저희가 나눠 계산한 값입니다.
올해 1~7월 누계는 35조 3,000억 원입니다. 지난해 1년 치가 38조 원이었으니 일곱 달 만에 작년 한 해의 93%를 채운 셈입니다. 이 비율도 저희 계산입니다.
정부는 목표를 올린 이유를 “주택공급 확대 및 청년·실수요자 지원 필요성 등 최근 상황 변화를 감안”했다고 밝혔습니다. 속도가 빨라서 올렸다는 설명은 자료에 없습니다.
그래서 내 지갑엔 — 늘어난 칸에는 이미 이름표가 붙어 있습니다
늘어난 칸이 누구 몫인지는 금융위원장의 당부에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8월 14일 회의에서 그는 “이주비·중도금·잔금대출 등 실수요 목적의 자금이 적시에, 차질 없이 공급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금융권에 요청했습니다.
이주비는 재개발·재건축으로 살던 집을 비울 때 쓰는 돈입니다. 중도금·잔금은 분양받은 아파트 값을 나눠 낼 때 쓰는 돈입니다. 셋 다 이미 계약서를 쥔 사람들의 돈입니다.
반대편도 같은 회의에서 나왔습니다. 은행연합회는 “신용대출 등에 대한 자율적인 관리 노력은 일관되게 지속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신용대출 칸은 그대로 조인다는 뜻입니다.
| 내 상황 | 이번 조정이 닿나 |
|---|---|
| 분양받아 중도금·잔금이 필요 | 닿습니다. 실수요 자금으로 지목됐습니다 |
| 재개발 구역에서 이주비가 필요 | 닿습니다. 이주비대출 LTV 산정방식도 8월 중 바뀝니다 |
| 생활비·투자용 신용대출 | 닿지 않습니다. 자율관리 지속입니다 |
| 전세자금 | 6·7월 두 달 연속 감소했습니다. 전세대출보증 제한 대상 확대는 법 개정이 필요한 과제로 분류됐습니다 |
연봉 5,000만 원 직장인을 떠올려 봅시다. 이번 조정으로 이 사람의 한도가 자동으로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한도는 여전히 DSR 같은 개인 심사가 정합니다. 달라지는 건 ‘창구에 물량이 남아 있을 확률’입니다. 그마저도 신용대출이 아니라 이주비·중도금·잔금 쪽에서 먼저 늘어납니다.
목표가 1.5%에서 3%로 올라가면 금액으로 몇 조 원이 더 풀리는지 궁금할 수 있습니다. 이번 발표 자료에는 그 금액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별 총량목표를 다시 나누는 협의를 이제 시작한다고 8월 14일 밝혔기 때문입니다. 배분이 끝나야 은행별 여력이 드러납니다.
대책의 나머지 절반은 2~3년 뒤에야 내 전셋값에 닿습니다
같은 대책에서 정부는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아파트 짓는 사업 자체를 담보로 돈을 빌리는 방식) 보증과 자금지원을 26조 3,000억 원에서 47조 8,000억 원+α로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PF 보증은 올해 23조 원, 내년 33조 원을 집중 공급할 계획입니다.
여기서 내 지갑까지 오는 길을 한 칸씩 이어 보면 이렇습니다. PF에 돈이 돌면 멈춰 있던 현장이 착공에 들어갑니다. 착공이 늘면 2~3년 뒤 입주 물량이 늘어납니다. 입주가 늘면 그 지역 전월세 가격이 눌립니다.
사슬이 세 칸입니다. 그래서 오늘 늘린 PF 자금이 내 전셋값에 닿는 건 빨라야 2~3년 뒤입니다. 그 사이 재계약이 돌아온다면 지금 조건으로 버텨야 합니다. 착공에서 입주까지 걸리는 시차가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앞서 다룬 주택통계 글에 숫자로 정리해 뒀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보면 방향을 알 수 있나요?
- 다음 달 가계대출 동향의 ‘일반 주담대’ 칸. 전체가 줄어도 이 칸이 계속 늘면 조이기가 실제로는 안 먹힌 것입니다.
- 은행별 총량목표 배분 결과. 금융감독원이 금융권과 협의를 시작한다고 8월 14일 밝혔습니다.
- 전세대출 증감. 두 달 연속 마이너스가 석 달로 이어지는지 봅니다.
- PF 보증의 실제 집행. 올해 23조 원은 계획입니다. 계획과 집행은 다릅니다.
덧붙이면 주택 거래량도 함께 봐야 합니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올해 2월 2만 2,000호에서 6월 3만 호로 늘었습니다. 거래가 늘면 대출 수요도 따라 늡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세 가지입니다
- 은행 한 곳만 보지 마세요. 총량은 금융회사마다 따로 관리됩니다. 한 곳이 마감이어도 다른 곳은 여력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 대출 계획을 연말로 미루지 마세요. 칸은 시간이 갈수록 찹니다.
- 이주비·중도금·잔금에 해당한다면 8월 중 시행되는 이주비대출 LTV 산정방식 변경을 창구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자주 묻는 질문
Q. 총량 목표가 3%로 올랐으니 제 한도도 늘어나나요?
자동으로 늘지 않습니다. 총량은 은행이 늘릴 수 있는 전체 물량이고, 제 한도는 소득과 기존 빚을 보는 개인 심사로 정해집니다. 관문이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Q. DSR과 총량 중 어느 쪽에 먼저 걸리나요?
정해진 순서는 없습니다. 다만 총량은 연말로 갈수록, DSR은 소득 대비 빚이 많을수록 걸립니다. 상반기에 소득이 넉넉한데 거절당했다면 총량 쪽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Q. 그럼 신용대출은 언제 풀리나요?
이번 대책에 신용대출을 풀겠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오히려 은행연합회가 자율관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7월 신용대출 증가폭도 2조 6,000억 원에서 2조 원으로 줄었습니다.
숫자 하나가 커졌다고 문이 활짝 열린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 늘어난 칸에는 이미 이름표가 붙어 있습니다. 목표 숫자를 외우는 것보다, 내 계획이 그 이름표 안에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소득 기준으로 한도가 잘리는 원리는 DSR이란? 신용점수 좋아도 대출이 막히는 진짜 이유에서 자세히 풀었습니다. 착공이 입주로 이어지는 시차는 미분양은 늘었는데 입주할 집은 왜 반토막일까에서 숫자로 확인할 수 있고, 지금 조건이 답답하다면 대출 갈아타기가 막혔다도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